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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의 가치

황칠의 과거

황칠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으로 보면 경주의 지진구에서 발견된 7세기 백제의 황칠원액이 발굴된 것이 가장 오래 되었다. 1300여년 전이다.

문화재전문위원을 지낸 이종석(1994)의 <한국의 전통공예>에서 “고대의 칠 중에는 옻칠 이외에 황칠이라는 천연 수액의 도료가 있어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면서 “무령왕릉의 채화두침과 천마총의 백화수피채화판 등에 황칠이라는 투명 도료가 도장됐기 때문에 완전히 부식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정리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주방가구 가운데 소반의 종류 중 “통영의 문목반으로서 황칠한 것이 가품(佳品)이다”고 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645년(보장왕 4)에는 황칠은 투명한 담황색을 띠며 그 빛이 금빛처럼 찬란하여 갑옷과 투구에 칠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한치윤(1765~1814)의 <해동역사>에도 “백제 서남해에서 나오며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고 휘황한 광채는 눈을 부시게 한다.”고 했다. 우리의 황칠을 직접 구하기 어려웠던 발해는 777년 사신 사도몽을 보내어 일본 황칠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신라 관직명 중에는 칠전(漆典)이라는 특별한 관청명이 있었다는 점에서 칠의 수요와 공급을 국가기관에서 관장하였고, 따라서 황칠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삼국시대에 유행하였던 장식문화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황칠은 중국에서 선호도가 더 높았다. 북송 시대 왕흠약(王欽若)과 양억(楊億) 등이 편찬한 백과사전인 <책부원구>(冊府元龜)에 “당 태종이 645년(정관 19)에 백제에 사신을 보내 갑옷 곧, 산문갑(山文甲)에 입힐 금칠(金漆. 황칠)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백제조’에는 “백제에는 섬이 세 개가 있으니 그곳에서 황칠이 난다. 6월에 칼로 그어 수액을 채취하니, 색깔은 황금색이다”라고 했다.

송(宋)나라 손목(孫穆)의 <계림유사>(鷄林類事, 1103)에,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나고 본래 백제에서 산출된다. 절인(浙人)은 신라칠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 1123)에도 “황칠이 나주(羅州)의 조공품이다.”라고 적고 “황칠은 섬에서 생산되는데 6월에 수액을 채취하니 그 빛깔은 금과 같으며 볕에 쬐어 건조시킨다. 본래는 백제에서 났으나 지금은 (중국의) 절강 사람들이 ‘신라칠(新羅漆)’이라 한다”고 했다.

고려에 들어서는 원나라에서 황칠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여러 번 있었다. 1276년(충렬왕 2)과 1282년(충렬왕 8)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보낸 바 있다. 중국측에서 이렇게 백제산 황칠을 특별히 언급한 까닭은 그것이 중국에서도 구하기가 매우 힘든 특산품이었음을 뜻한다.

조선 때는 1794년(정조 18) 호남 위유사 서영보가 올린 글 중에 완도의 황칠 징수에 대해 현지 아전들이 농간을 부려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황칠나무는 이와 같이 200여년 전까지 널리 재배하였으나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백성들이 심기를 꺼려해 점차 맥이 끊겨 버렸다.

황칠의 현재

우리나라 주변 강대국의 선호 및 관리들의 수탈로 농민이 재배를 꺼려하여 점차 맥이 끊긴 황칠은 현대에 들어 과학적인 분석으로 그 유효성 및 다양한 기능이 밝혀짐으로써 재조명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8년과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야스다구니가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하였다. 주성분은 세스키테르펜(Sesquiterpene)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을 함유하고 있다고 소개했으며, 1930년대부터 한국의 황칠나무 분포와 성분 등을 조사해 일본에 이식하려 했으나 기후가 맞지 않아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정병석 명인은 대통령상을 수상한 황칠연구를 통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GC/MS분석을 하였다. 성분 분석 결과 Sesquiterpene에 속하는 β - selinene 외 24종 이 분석되었고, 그 후 다른 학자들에 의해 황칠나무 잎에서 isohumulene 등 18종이 분석되어 그 유효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이에 황칠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 전남도는 1996년 고유농산물 세계화 대상품목으로 황칠을 선정하였고, 육성사업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본격적인 조림 및 학자들의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다. 1998년 정병석 명인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곽상수 박사, 문제학 박사와 공동연구한 “항암 활성을 가지는 황칠나무 추출물”을 2001년에 특허 등록하였으며, 2002년 전남대 황백 교수 등은 “황칠나무 잎의 면역 활성 증진 기능 탐색”연구 결과를, 2009년 전남보건환경연구원은 “황칠나무의 기능성 및 약리효과” 보고서를 통해 면역 활성과 항균 효과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2011년 전남생물산업진흥재단 천연자원연구원에서 “황칠나무의 유효 성분 발굴과 질병 예방 및 치유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황칠나무 추출물의 국제적 안전성 인증을 획득했다.” 고 발표하였다.

이렇듯 정병석명인이 황칠에 대한 연구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후 황칠의 가치가 재조명됨으로써, 많은 학자들이 황칠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고, 또한 다양한 활용방안이 강구되어 많은 특허가 등록되고 있다.

□ 황칠에 대한

논문 목록 현황

특허 목록 현황

황칠의 미래

사람은 중대한 질병에 걸리게 되면 가장 먼저 왜 그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 그러나 암 등 신체의 각종 종양, 장기의 기능 장애, 호르몬 불균형, 면역력 약화, 난임(불임), 선천성 장애아 출산, 어린이들의 자폐증 등 난치성 질병은 그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생활환경 및 식습관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4% 수준에 불과하다. OECD 34개국 중 32위로 최하위다. 쌀 자급률은 100%이지만, 콩은 32%, 옥수수는 4.1%이며, 특히 밀은 1%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많은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입 농산물의 종자가 어디서 왔고 어떠한 농약과 화학비료가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특히 안정성 논란으로 현재 38개국이 수입금지하고 있는 GMO(유전자조작/변형 식품)은 세계 제1의 수입국이며 2014년 기준 1인당 약 45Kg을 먹고 있다. 매일 먹는 콩나물, 두부, 간장, 고추장, 콩기름, 유채 카놀라 기름과 참치통조림의 기름 및 대부분의 가공식품들이 GMO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사먹는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천부적으로 부여 받았다. 그 기본은 건강이다. 건강은 정신적인 편안함과 먹거리의 안정성에 달려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다음으로 국민의 비만율과 유병율(有病率)이 높은 한국사회의 병폐는 소비하는 식품에서 유래한다는 연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칠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즉, 우리 체질에 가장 잘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다양한 질병 예방과 치유 효과가 밝혀지고 있다. 특별한 독성이 없으며, 항암 및 항균 효과가 뛰어나고, 망가진 인체의 기본적 능력을 회복시키는 데 빠른 효과를 보인다. 또한 체내 독성물질을 배출시키면서 면역력을 회복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수지액인 황칠은 금속, 목재, 섬유 등 다양한 재료에 활용할 수 있는 천연투명도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며 천연 안식향까지 있어 금상첨화다.

황칠나무가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자원이라는 점에서, 관련 기술의 상용화는 국가차원에서도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 화장품 원료, 전자파 흡수염료, 식품 신소재까지 의식주 전반에 걸친 친환경 적용으로 녹색문화를 추구하는 현대의 패러다임에 적합한 소재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도 황칠의 가치가 인정 받으면서, 새로운 영역의 확대가 무궁무진한 ‘황금나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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